'페이퍼컴퍼니' 걸러낸다더니…
50대사 중 14곳 '실질자본금 미달' 기준 논란
조사대상도 80% 늘어…정상 기업마저 부담
전문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
상위 50대 건설사 중 21곳이 실질자본금이 법정기준(5∼12억원)에 못미친다는 이유 등으로 실태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번에 수천억원짜리 공사를 따내고, 국제기준에 따라 매년 회계감사를 받는 대형 건설사들의 재무제표까지 다시 들춰보는 저인망식 실태조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행정 낭비이자, 기업 부담만 키운다고 비판한다.
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전국 17개 시ㆍ도는 지난 10월부터 이달말까지 3개월간 ‘건설업 부실ㆍ불법업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실태조사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회사) 등 부실ㆍ불법 건설업체를 솎아내 능력있는 기업의 수주기회를 보장하고 시설물의 품질을 높이려는 취지다.
국토부는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ㆍ키스콘)을 통해 자본금과 기술자 등 건설업 등록기준 미달 의심업체과 등록증 대여, 기술자 중복배치 등 불법 의심업체를 각각 선별해 실태조사 명단을 작성했다.
올해 조사대상은 종합건설업 4101개, 전문건설업 1만3290개 등 총 1만7391개사이다. 지난해(9636개사)와 비교하면 무려 80%(7755개)나 늘었다.
예년과 다른 점은 회사가 탄탄한 중ㆍ대형 종합건설사들이 무더기로 조사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50개사 중 21곳이 실태조사를 받았고, 이 중 14곳은 법정자본금 미달이 의심된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특히 10대 건설사 가운데 상장사 2곳이 자본금 미달로 실태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ENR지가 선정한 세계 50대 건설사에도 포함된 A사의 경우 시가총액 2조원대, 매출 10조원대 규모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실질자본금의 인정범위에 대한 정부-기업 간 견해 차이 때문”이라며 “소명을 통해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 말고도 자본금 미달 의심 종합건설사는 3692곳이나 된다. 전문건설업체까지 합치면 총 1만4405곳이다.
국토부는 이 중 상당수 업체가 실질자본금 기준을 못맞춘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3년간 등록기준 미달로 퇴출된 종합건설사만 1500여곳이다.
실질자본금은 최초 건설업 등록시 납입자본금이 아니라 실질자산에서 실질부채를 뺀 금액이다.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부채가 많으면 기준에 미달된다. 일부 대형사들이 조사명단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해당 건설사는 실질자본금 보유 여부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다. 외부 회계사를 통해 ‘재무관리상태 진단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거나, 자체적으로 문제가 된 자본 내역에 대해 일일이 소명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진단보고서는 회사 규모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규모가 큰 회사는 소명자료 작성에도 상당한 시간ㆍ비용을 써야 한다.
등록기준 미달업체로 확정되면 최대 6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수주로 먹고 사는 건설사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에서 멀쩡히 영업 중인 대형건설사까지 실태조사를 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실태조사는 페이퍼컴퍼니처럼 실체없는 건설사를 걸러내는 용도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