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지방계약법 적용을 받는 공사에서 사고사망만인율(이하 만인율) 산정 시점 문제로 1순위 업체가 번복되는 초유의 상황이 빚어졌다. 조달청은 만인율 산정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더라도, 입찰공고일 기준 시점의 제출서류만 인정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입찰 참여 건설사의 행정서류 완비 책임을 무겁게 물은 결과다.
12일 조달청은 지난 2월 개찰한 종합평가낙찰제 방식의 ‘성남시 하수관로 정비사업(추정가격 305억원)’에서 해유건설의 1순위 지위를 박탁하고, 가격개찰 2순위였던 태평양개발을 대상으로 2단계 종합평가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이 공사는 만인율 산정 기준을 두고 1순위 업체와 조달청 사이에 공방이 벌어지며 개찰 이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낙찰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해유건설은 이번 입찰에 참여하며 경기지역 A사와 공동수급체를 구성했는데, A사가 입찰공고일 기준 만인율 감점 대상이었다는 점이 뒤늦게 드러났다.
A사는 2023년 발생한 현장 사망사고로 소송을 진행하는 가운데, 만일율 산정 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하지 않고 본안 소송만 진행했다. 본안 소송을 통해 작년 11월 1심 승소는 했지만, 가처분 신청을 하지 않은 탓에 입찰공고일 기준 만인율이 반영됐던 것이다.
특히 A사가 1심 승소 후 공단에 만인율 재산정을 요청했음에도, 공단이 재산정 행정 작업에 3개월을 소요하며 입찰공고일 기준으로는 만인율이 잡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유건설은 2단계 종합평가에 필요한 서류 제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인지한 후 부랴부랴 만인율 재산정 자료를 조달청에 제출했지만 이견이 발생했다.
해유건설은 국가계약법과 달리 지방계약법에서는 2단계 종합평가 산정 시 활용하는 제출서류 기준시점이 ‘입찰공고일’로 명확하게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1순위 자격 유지를 주장했다.
이에 조달청은 행정안전부와 고용노동부에 유권해석을 받은 후, 지난 주 두 차례에 걸쳐 자체 심의를 열고 해당 사안을 논의했다.
심의 결과 조달청은 입찰공고일 기준 시점으로 만인율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다.
지방계약법에서 사회적신인도(만인율 포함) 항목에 대한 평가기준일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지방자치단체 입찰 시 낙찰자 결정기준’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은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기준’및 ‘시설공사 적격심사 세부기준’을 준용하도록 한 점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평가기준일은 입찰공고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조달청은 “공사 발주 이전에 1심 승소 등으로 만인율 재산정 요인이 발생한 점은 인정하나, 입찰공고일 기준 제출 서류에는 반영되지 않았기에 감점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건설사가 효력정지가처분신청 등 법적 절차를 게을리한 점을 지적한 대목으로, 입찰참가 전에 행정서류 제출 완비 조건을 스스로 충족시켜야 할 책임을 무겁게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중견 이상 건설사들은 “당연한 판단”이라는 분위기다. 대형 건설사 업무 담당자는 “국가ㆍ지방계약을 따지지 않고 국내 모든 공공입찰에서 입찰공고일 기준 시점으로 기업 평가를 받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소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아쉬운 기색이 옅보인다. 행정업무 처리 역량이 대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 중소 업체는 이의신청을 위한 구비서류 작성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대전 지역 건설사 대표는 “대형 건설사에는 ‘당연히’, ‘상식적’인 부분조차 중소사에서는 낯설고 어려운 경우가 많다”라며,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나왔으면 한다”라고 토로했다.
박희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소 건설사들이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접근성을 높이고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특히 사망재해 과실과 관련한 재판이 계류 중일 때에는 결과가 확정될 시점까지 만인율을 산정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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